시도
20221130

십일월에 오월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은 죄를 겨우 알 것 같은 나날이었지만
내 죄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앤서니 퀸이 나오는 옛날 영화를 보았다
그 여자, 착한데…… 나쁘지?
응.
그래서 좋아.

심술궂은 비바람이
다 떨어뜨려서 밟으며 걸어갔다
샛노란 나뭇잎들을

잎은 뚫는 성질을 가졌다
봄에 대한 잎의 입장은 그런 식으로 증명되었고
마룻바닥은 무릎을 받아주는 성질을 가졌다 기도에 대한
걸레질의 입장을 이런 식으로 증명하고 싶다

십일월에도 오월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를 내가 지나치고 있었다
김소연, 노는 동안


비는 밀린 방학숙제를 마무리 지으려는 듯 이틀 전의 밤부터 어제까지 쏟아졌고, 간신히 나뭇잎을 몇자락 매달고 있던 나무는 앙상해져버렸다. 이런 십일월의 끝자락에 '노는 동안'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어, 속으로 그 시를 부르며 낙엽길을 걷다가 낙엽 하나를 주워 'i에게'의 한 페이지에 담았다.

어느새 이 시를 생각하면 내게 그 시집을 주었던 i 외에도 j가 떠오르게 되었다. 내가 이 시를 꺼내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이야기를 꺼내었을 때, 단풍이 떨어지기 전에 못다한 것들을 전하길 기원해주던 다정한 사람. 이제는 쓰고 지우는게 아니라 떠올리다 저물기를 반복하게 되었지만, 이 날을 핑계삼고 시를 핑계삼아 이런 이야기이라도 꺼내보게 되네.